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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iday, November 27, 2020

연구자 권리 보장, 살 집이 시작이다 - 한겨레

[토요판] 기획2
연구자 공동체 사회 주택

연구자 위한 집이라는 상상을 현실로
1~2인가구 100여세대 2곳 내년 입주

공유지 차지하는 ‘스쿼팅’ 했지만
기반공사 마치고 돈만 날린 채 무산

“주택은 ‘연구 안전망’ 위한 시작점
최소한의 환경 위한 권리선언 준비 중
내년 연구자 복지법 등 입법운동 할 것”

지난 10월30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하우징랩에서 연 사단법인 ‘연구자의 집’ 창립총회 장면. 연구자의 집은 연구자 주택사업에 이어 ‘연구자 권리선언’과 연구자복지법을 위한 입법 운동 등을 이어갈 계획이다. 연구자의 집 제공
지난 10월30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하우징랩에서 연 사단법인 ‘연구자의 집’ 창립총회 장면. 연구자의 집은 연구자 주택사업에 이어 ‘연구자 권리선언’과 연구자복지법을 위한 입법 운동 등을 이어갈 계획이다. 연구자의 집 제공
연구자들이 직접 모여 스스로 살 집을 구한다. 월평균 소득 70%(지난해 도시근로자 기준) 이하의 집 없는 연구자들을 위해서다. 지난해 비정규직 강사 처우 개선 내용을 뼈대로 한 개정 고등교육법(강사법) 시행 이후 연구자들 사이에서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대학은 인건비 부담을 이유로 비정규직 강사들을 내몰았다. 2019년 1학기만 일자리를 잃은 강사가 7830여명이다.
처음부터 ‘집’은 아니었다. “교수 아니면 낭인이라는 현실을 어떻게든 바꿔보고 싶었다.” 박배균 서울대 교수(지리교육학)는 “대학 사회는 이미 붕괴됐고, 일부를 제외하면 기초학문 연구만으로 먹고살 수 없게 된 지 오래”라며 “대학 내 교수, 강사, 대학원생 등 각자가 쪼개져서는 지식생태계를 복원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들을 ‘연구자’라는 울타리 안에 모이도록 해 함께 길을 모색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렇게 2019년 1월 탄생한 조직이 연구자 단체 ‘연구자의 집’(이사장 최갑수 서울대 명예교수)이다. 서로의 문턱을 낮춰 모이니 연구자를 위한 고민은 진화했다. 박 교수는 “마침 연구자들 사이에서도 주거(주택) 문제가 심각했고, 우리 단체가 ‘연구자의 집’이니 문제의식을 ‘집’에 집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연구자들끼리 공간을 공유하면 (전공이) 다르더라도 같이 뭔가를 함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일종의 ‘공간 전략’인 셈”이라고 덧붙였다. 단체를 만들고 7개월이 지난 그해 8월, ‘연구안전망 구축과 연구자 상호부조의 가능성 모색’을 목표로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공동체 사회주택(공공임대) 논의를 시작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또다시 1년 4개월이 흘렀고, 이제 그 결과물이 손에 잡힐 듯하다. 연구자들은 서울 강북구, 중랑구 등 두곳에 집터를 마련하기로 하고 내년 초 입주자를 공모할 계획까지 세웠다. 규모는 1~2인가구 중심의 100여세대다. <한겨레>는 지난 24일 오전, 연구자의 집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박배균 서울대 교수, 박철현 국민대 연구교수(사회학), 박지훈 중앙대 연구교수(사회학) 등을 화상 프로그램으로 비대면 인터뷰했다. ―연구자 주택사업은 언제 어떻게 시작됐나? 박배균 조희연 현 서울시교육감이 민교협(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의장을 하던 2013년 즈음에 연구자들의 공간을 만들자는 얘기가 나온 바 있다. 그때 얘기가 오간 게 ‘진보학술의 집’이었다. 진보학술단체나 운동단체들의 연구자가 공유하는 공간이 있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이었다. 내가 의장을 맡은 뒤(2017년)로 그 고민을 확장하기로 했다. 박지훈 서울에 짓는 두곳은 시작이다. 참고로 지방의 연구자 상황이 더 좋지 않다. 부산, 대구, 광주 등 최소한 광역시별로 연구자 주택 계획을 갖고 있다. 실제로 몇몇 지역에서 비정규교수노조 등이 연락을 해왔고, 사업 추진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여성 연구자들 수요가 절반 넘어
박배균 교수가 꺼낸 “공간전략”이라는 말에는 여러 경험이 녹아들어 있다. 박 교수는 2018년부터 동료 연구자들과 함께 서울 ‘경의선공유지’에서의 스쿼팅(도심의 빈 공유지를 차지하는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했다. “연구자들만 오는 공간보다는, 연구자들의 성과인 지식과 그로부터 나오는 가치를 시민들과 교류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들자는 계획을 세웠”다. 2019년 봄에는 컨테이너 8개동을 이어 붙여 사무실, 연구공간, 강연장, 세미나실 등의 복합시설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기반공사만 마치고 결국 마포구의 반대로 “2천만원만 날린 채” 무산됐다. 하지만 이 개념은 연구자의 집이 추진하는 연구자 주택에 옮아왔다. 이르면 2021년 서울 강북구에 들어서는 건물은 지상 7층에 지하 2층으로 주택 70세대 내외(1~2인가구로 구성, 주민 6가구 포함)로 구성된다. 지상, 지하에는 연구자 공간만 아니라 대안대학, 청소년 인문학 강좌 등 프로그램을 운영할 세미나실, 강연장 등과 공유 사무실이 들어선다. 건물 전체에 1~2인가구 40여세대가 들어서는 중랑구 면목동도 마찬가지다. 박 교수는 “집을 만들어 공간을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연구자 전체의 지향을 만드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르면 2021년 들어설 연구자 주택(공동체 사회주택) 조감도. 연구자의 집 제공
이르면 2021년 들어설 연구자 주택(공동체 사회주택) 조감도. 연구자의 집 제공
―1인가구가 많다. 박지훈 단체에서 연구자 주거 수요조사를 했다. 지난 6~7월 조사에서 541명이 답했고, 그 결과물이다. 그래서일 것이다. 특히 여성 연구자들의 수요가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 예상을 넘어서는 반응이었다. 특히 안전에 대한 요구가 많아서 적극 반영할 예정이다. 박철현 아직 결혼하지 않은, 비정규직인 나도 해당된다(웃음). 비정규 교원으로 살다보면 삶이 주는 비루함이 있다. 당사자로 참여해 함께 해결해보자는 마음이 있었다. ―입주하는 연구자의 기준은 무엇인가. 박배균 구체적인 것은 입주자선정위원회를 꾸려 정할 예정인데, 큰 틀에서는 사회주택(국가나 비영리 단체가 주거 복지를 위해 시세보다 낮은 임대료로 제공하는 공공주택)의 취지에 맞출 것이다. 또 연구소나 대학에 직위를 갖고 있는 연구자만 아니라 대학 밖에서 연구하는 이른바 ‘독립연구자’까지 대상자로 삼을 생각이다. 연구자로서의 삶은 알려져 있는 것보다 더 열악하다. 연구자의 집에서 지난 6월27일부터 7월24일까지 541명의 연구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보면, 인문사회계열 등을 중심으로 한 기초학문 연구자 열 중 넷(43%)이 150만원 이하를 벌고 있다고 밝혔을 정도다. 입주 기준이 무주택, 월평균 소득 70%(지난해 도시근로자 기준) 이하의 연구자인데, 이 기준을 충족하는 연구자는 부지기수다. ―하지만 서울, 명문대 소속 연구자가 중심이 되는 사업이라는 시선도 있을 법하다. 박철현 연구자의 집에서 초기부터 활동해온 이들의 소속만 보면 그런 오해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 입주를 한 뒤 연구자들이 강의와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지식 교류의 허브 기능을 서서히 갖춰갈 것이다. 이를 위해 연구자의 집도 입주부터 관리까지 개입할 계획이다.
‘연구안전망’ 첫걸음 될 것
연구자 사회주택이 자리 잡게 되면, ‘연구자의 집’ 단체는 이 기획을 다른 도시로 확장하는 동시에 문제의식을 주거 보장에서 보험이나 연금 등으로 넓혀갈 것이다. 이는 이른바 ‘연구안전망’을 위한 것이다. 연구안전망은 박치현 박사(한국교원대 박사후연구원)가 제안한, 연구자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뜻하는 개념이다. 박배균 교수는 “연구자가 비정규직일 때, 집이나 연구 공간이 없는 경우도 흔하지만 4대보험이 없는 경우도 많다. 연금 등 노후 대책을 기대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며 “연구자 개인의 생존에 있어 절실한 문제들은 이제 우리 모두가 (기초학문 연구를 위해) 책임져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보나. 박배균 연구자의 집은 정규직 교수, 비정규직 강사, 대학원생 등 직위나 신분 차별을 최소화하고 연구자라는 하나의 정체성을 바탕으로 수평적으로 교류하고 소통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그렇게 초토화된 지식생태계를 복원할 수 있도록 하는 단초라도 마련할 수 있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지난 10월30일 사단법인으로 출범한 연구자의 집은 ‘연구자 권리선언’을 준비 중이다. 선언문 초안에는 “연구자로서 최소한의 물질적인 기반을 (헌법에 의해) 보장받는다”는 내용을 분명히 한다. 연구자의 집은 선언에서 “국가는 연구자의 안정적 연구 환경을 보장하기 위하여 연구자에게 연구 공간 등 편의를 제공하고, 연구자의 사회경제적 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 정책과 제도를 마련할 의무를 지닌다”는 등 국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다. 이와 관련해 박철현 교수는 “연구자 주택이 현실화한 내년에는 권리선언을 토대로 연구자복지법을 위한 입법 운동으로 활동을 확대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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