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충돌이 던지는 5가지 화두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 공동취재사진, 연합뉴스
“정부를 공격한다든지 정권을 흔드는 것이 살아 있는 권력 수사라고 미화돼서는 안 된다. 살아 있는 권력을 수사한다는 것은 순수한 의미의 권력형 비리를 캐내는 것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이)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갖고 검찰권을 남용하지 않느냐는 우려에 휩싸여 있다.”(2020년 11월4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답변) “검찰 개혁의 비전과 목표는 형사법 집행 과정에서 공정과 평등을 보장하는 것이다. 살아 있는 권력 등 사회적 강자의 범죄를 엄벌해 국민의 검찰이 돼야 한다. 살아 있는 권력의 비리를 눈치 보지 않고 공정하게 수사하는 검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검찰을 만드는 데 힘써달라.”(2020년 11월3일 윤석열 검찰총장의 충북 진천 법무연수원 강연) 검찰 개혁을 둘러싼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다. 애초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 비롯한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총장의 갈등이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충돌로 폭발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하반기 운명을 더는 검찰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해 보인다. 윤 총장과 검찰도 정치권력에 대한 수사 주도권을 집권 정부한테 빼앗기지 않겠다는 태도다. 양자 모두 운명을 건 싸움이어서, 충돌은 윤 총장이 물러나는 2021년 7월까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전쟁은 1월8일 막 취임한 추 장관이 인사를 통해 검찰 안 윤석열 사단을 해체한 일로 시작됐다. 이 인사에서 한동훈 대검찰청 반부패강력부장과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부장,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 등 윤 총장 측근이 대부분 좌천됐다. 이 인사는 조국 전 장관 가족 의혹 사건과 청와대 선거 개입 의혹 사건 수사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평가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최근엔 추미애 장관이 10월19일 수사지휘권을 발동해, 라임자산운용 로비 의혹 사건(라임 의혹 사건)과 윤 총장 가족 의혹 사건과 관련해 윤 총장이 수사 지휘를 중단하고 수사 결과만 보고받으라고 지시했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에게 특정 사건의 수사 지휘를 중단시킨 일은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이다. 그러자 윤 총장은 10월22일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검찰총장의 지휘권을 박탈하는 것은 정말 비상식적이다. (장관의 수사 지휘가) 위법한 것은 확실하다”고 공개적으로 반발했다. 또 윤 총장은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 장관의 부하라면 정치적 중립과 거리가 먼 얘기가 되고 검찰총장이라는 직제를 만들 필요도 없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에 가만있을 추 장관이 아니었다. 추 장관은 국정감사 직후인 10월27일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 사기 사건(옵티머스 사기 사건)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이 2년 전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의 수사 의뢰를 받고도 무혐의 처분한 것을 감찰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은 윤석열 총장이었다. 현재 추 장관의 수사 지휘와 감찰 지시 결과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추 장관과 윤 총장의 충돌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와 검찰 역할과 관련해 몇 가지 의미심장한 화두를 던졌다. 추 장관과 여당에선 일련의 조처가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임을 강조했다. 반면 윤 총장과 야당에선 ‘검찰 수사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다. <한겨레21>은 이번 사안의 쟁점을 5가지로 나눠 법학, 정치학, 행정학 분야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추 장관의 수사 지휘와 감찰 지시는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였을까? 법률적 근거는 명확하다. 정부조직법 제32조엔 ‘법무부 장관이 검찰 사무를 관장하고, 법무부 장관 소속으로 검찰청을 둔다’고 돼 있다. 검찰청법 제8조에도 ‘법무부 장관은 검찰 사무의 최고 감독자로서 검사를 지휘·감독하고, 구체적 사건에 대하여는 검찰총장만을 지휘·감독한다’고 돼 있다.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과 검찰에 대한 지휘·감독자라는 점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전문가들도 추 장관의 조처가 ‘민주적 통제’라는 데는 이견이 없었다. 임지봉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 소장(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은 “헌법 제1조처럼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검찰권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국민은 대표자인 대통령이나 장관을 통해 검찰권을 감시·통제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대화 상지대 총장(정치학)도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군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다. 검찰이 무리하게 수사·기소를 하거나 안 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상황을 반드시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 장관의 이번 ‘수사 지휘’와 ‘감찰 지시’가 적절했는지를 두고는 의견이 갈렸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문제가 없다고 했다. “이번 조처는 윤 총장이 해당 사건과 관련됐을 가능성이 있어서 취해진 일이었다. 수사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일이었다”고 말했다. 임지봉 소장도 “그동안은 법무부 장관이 검찰 수사를 방치하거나 은밀하게 지휘하는 등 부당한 사례가 많았다. 장관의 공개적인 수사 지휘가 바람직하고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법학·전 국회의원)는 추 장관의 지휘가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검찰총장을 임명했으면 스스로 일할 수 있게 맡겨놔야 한다. 장관이 사건에 대해 하나하나 지시하면 제대로 일하기 어렵다. 대통령이나 장관이 도저히 함께 일할 수 없는 총장이면 그냥 해임해야 한다. 2년 임기를 보장하지만 해임도 가능하다고 본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도 “큰 틀에서 민주적 통제는 필요하지만 검찰 수사에 장관이 구체적으로 개입해선 안 된다. 행정부가 권력기관을 직접 지휘하면 박근혜 정부의 국정 농단 같은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도 전문가 의견이 갈렸다. 강원택 서울대 교수(정치학)는 “검찰이 성역 없이 수사하는 것을 지켜줘야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눈치 안 보고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정치학)도 “청와대나 법무부 장관이 검찰을 구체적으로 지휘, 통제한다면 검찰 수사의 독립성은 보장할 수 없다. 집권 정부가 검찰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검찰 개혁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의 독립성 보장이 검찰의 위험성을 키운다는 의견도 있었다. 황희석 변호사(법무부 전 검찰개혁추진단장)는 “보수정부가 검찰을 악용할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민주정부가 검찰의 자의적 수사를 통제하려고 하면 수사의 독립성을 이야기한다. 정부가 그런 자의적 권한을 보장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황운하 더불어민주당 의원(법학·전 대전경찰청장)도 “검찰 수사의 독립성을 보장하면 검찰 수사가 자의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오히려 법무부 장관이 검찰의 자의적 수사를 강력히 통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준사법기관으로서 독립성을 갖는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의견이 달랐다. 서보학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법권은 행정부와 상관, 사건 관련자로부터 독립돼야 한다. 그러나 검사는 법을 집행하는 행정부의 일원이고, 상관의 지시를 받으며, 재판의 한쪽 당사자로서 그 어떤 독립성도 없다. 검사들이 착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재록 전주대 교수(행정학)는 “검찰이 준사법기관이라는 인식은 보편적이다.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재판 절차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사법기관 성격이 있다. 검사는 행정기관과 사법기관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갖는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민주적 통제와 수사의 독립성을 둘러싼 논란은 어떻게 해소해야 할까? 이에 대해서는 전문가 의견이 대체로 일치했다. 무엇보다 검사의 직접수사권을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인회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검사의 직접수사권을 폐지하는 게 정답이다. 수사기관과 기소기관이 분리돼야 한다. 다만 국민의 혼란을 줄이고 안정적으로 개혁하기 위해 단계적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철희 지식디자인연구소장(전 국회의원)도 “문재인 정부 초기에 검찰 개혁 방향을 수사와 기소 분리로 갔어야 한다. 집권 초기에 적폐 청산 수사를 검찰에 맡겼다가 나중에 검찰을 개혁하려고 하니 갈등이 생긴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수사권 폐지뿐 아니라 독점적 기소권 분산까지 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소준섭 전 국회도서관 조사관(국제관계학)은 “미국의 대배심(기소배심)이나 프랑스와 독일의 사소(시민 기소), 일본의 검찰심사회처럼 시민이 기소에 참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독점적 기소권이 검찰의 문제를 낳았다”고 말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변호사)도 “검찰 개혁의 2단계는 수사와 기소에 대한 시민 통제와 참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안에서는 올해 개정돼 2021년 시행을 앞둔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을 재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박주민 의원(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은 “당내에 21대 국회 임기인 2024년까지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법 개정을 하자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황운하 의원도 “수사와 기소 분리를 당론으로 정하고 다음 대선 공약으로 내걸어 관련 법을 재개정해야 한다. 준비가 필요하다면 시행까지 약간의 유예기간을 두면 된다”고 말했다. 김규원 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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